생물학자들이 바이러스를 살아있는 생물로 인정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바이러스가 세포로 되어 있지 않고 복제나 대사와 같은 기본적인 생명활동을 세포성 생물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살아 있는 생물의 세포에서 유래하며, 세포성 생물과 근본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유전정보를 저장하고 전파한다. 바이러스는 세균, 고세균, 진핵생물을 포함한 세포로 된 모든 생물에 감염한다. 이들은 복제하고, 그리고 다른 생물과 상호작용을 하여 숙주에 감염되면 종종 심각한 질병을 유발한다. 또한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수적으로 가장 많은 생물이다. 마지막으로 바이러스는 다른 생물과는 완전히 독자적으로 진화하였고, 그래서 생물의 한 영역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몇 가지 요인이 바이러스 계통수의 작성을 어렵게 한다. 많은 바이러스의 유전체는 크기가 너무 작아서 바이러스를 세포성 생물과 관련지으려는 계통학적 분석에 한계가 있다. 빠른 돌연변이 속도로 인한 바이러스 유전체의 빠른 진화는 오랜 시간에 걸친 진화적 유연관계를 혼란스럽게 하는 경향이 있다. 바이러스 화석이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너무 작아 화석화되기 어려움) 고생물학적 자료도 바이러스의 기원에 관한 단서가 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바이러스는 매우 다양하다. 몇몇 증거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각각의 주요 생물 집단 내에서 반복적으로 진화하였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바이러스의 난해한 진화적 유연관계를 밝히는 경우의 어려움은 계통발생에 기초한 분류를 어렵게 한다. 대신에 바이러스는 유전체의 구조(예로 유전체가 RNA 혹은 DNA인지 그리고 단일가닥 혹은 이중가닥인지에 따라)에 기초한 몇몇 기능적으로 비슷한 그룹 중 하나에 놓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정의된 그룹의 대부분은 단계통군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 많은 RNA 바이러스는 아마도 탈출한 유전체의 구성요소일 것이다
오늘날 바이러스는 세포성 생물종의 절대 기생체이지만 한때는 기본적인 세포 기능에 관여하던 세포 구성요소이었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세포성 생물의 '탈출한' 구성요소로서 이제는 숙주와는 무관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 단일가닥 RNA 바이러스
이 부류에 속하는 바이러스는 유전체가 단일가닥의 네거티브 센스(negative-sense; (-)'로 표기 RNA로 이루어져 있다. 즉, 이 RNA는 단백질의 번역에 필요한 mRNA의 상보체이다. 많은 (-) 단일가닥 RNA 바이러스는 단지 몇 개의 유전자만을 가지며, 그중의 하나가 (-) RNA 유전체로부터 mRNA를 만드는 RNA 의존성 RNA 중합효소이다. 오늘날의 세포성 생물은 (적어도 바이러스 감염에 의하지 않고서는 mRNA를 이런 방식으로 만들 수 없다. 하지만 DNA가 유전정보의 주된 저장분자가 되기 전의 먼 과거에는 단일가닥 RNA 유전체가 보편적이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세포의 유전체와 독립적으로 복제하기 시작한 자가복제 RNA 중합효소 유전자는 아마도 재조합을 통해 숙주 DNA의 몇몇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를 추가적으로 획득하였을 것이다. 만일 그중에 바이러스의 단백질 껍질을 발달시키는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었다면, 이 바이러스는 숙주를 벗어나서 생존하고 새로운 숙주에 감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사건이 생물계통 전반에 걸쳐 독립적으로 여러 번 발생했다고 믿고 있으며, 이는 많은 (-) 단일가닥 RNA 바이러스가 세균에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서로 유연관계가 가깝지 않은 다양한 생물에 감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 단일가닥 RNA 바이러스는 특정 분류군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아마도 여러 번 일어난 세포성탈출의 특별한 과정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 단일가닥 RNA 바이러스의 대표적인 예로는 홍역, 볼거리, 광견병 그리고 계절성 독감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있다.
(+) 단일가닥 RNA 바이러스
다른 종류의 단일가닥 RNA 바이러스 유전체는포지티브센스(positive - sense; (+)'로 표기] RNA로 구성된다. (+) RNA 유전체는 이미 번역 준비가 된 상태이다. (-) RNA와는 달리 단백질 번역에 앞서 상보가닥의 형성을 위한 유전체의 복제는 필요 없다. (+) 단일가닥 RNA 바이러스는 가장 흔하고 다양한 바이러스 계열이다. 작물의 질병을 유발하는 대부분의 바이러스가 이 집단에 속한다. 이들은 식물에 감염하여 잎이나 줄기의 여기저기에 있는 세포를 죽게 함으로써 죽어 변색된 조직이 살아 있는 세포와 함께 조각을 이어 붙인 것처럼 된다. (그래서 모자이크 또는 얼룩무늬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다른 (+) 단일가닥 RNA 바이러스는 세균, 곰팡이 및 동물에 감염한다. (+) 단일가닥 RNA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인체 질병에는 소아마비, C형 간염, 감기등이 있다. 다른 바이러스 집단과 마찬가지로 이들 바이러스도 세포성조상의 여러 집단에서 여러 번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RNA 레트로바이러스
RNA 레트로바이러스(RNA retrovirus)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를 포함하는 집단으로잘 알려져 있다. 앞선 두 범주에 속한 바이러스들처럼 RNA 레트로바이러스도 단일가닥 RNA로 되어 있으며, 세포의 구성요소가 탈출하여진 화한 것으로 보인다.
레트로바이러스는 역전사로 자신을 재생산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숙주인 척추동물의 세포핵에 들어간 레트로바이러스는 자신의 역전사효소를 이용하여 바이러스 RNA 유전체로부터 cDNA를 합성하고, 그다음에 단일가닥 cDNA를 이중가닥 DNA로 복제한다. 또 하나의 바이러스 유래 효소인 삽입효소(integrase)는 새로 합성한 이중가닥 바이러스 DNA를 숙주의 유전체에 삽입한다. 이제 바이러스 유전체는 숙주세포의 DNA와 함께 복제된다. 삽입된 레트로바이러스 DNA는 '프로바이러스(provirus)'라 부른다.
레트로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체 일부가 세균, 식물, 여러 종류의 동물을 포함한 다양한 생물의 유전체 구성요소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척추동물만 감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몇 레트로바이러스는 여러 종류의 암 발생과 관련이 있으며,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는 통제받지 않은 복제를 수행하는 것 같다.
이중가닥 RNA 바이러스 이중가닥 RNA 바이러스는 단일가닥 RNA조상으로부터 진화했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진화한 듯하다. 이들 바이러스는 서로 밀접한 유연관계가 없으며, 생명의 계통수 전체의 생물에 감염한다. 예를 들어 일부 바이러스는 식물에서 여러 심각한 질병을유발하는 한편, 다른 바이러스는 많은 유아 설사의 유발원이다.